나의 출근길은 공원을 가로 지나간다. 매일 아침 연길공원 뒤산 소나무숲을 헤치며 가는 출근길은 신선한 아침공기로 참으로 상쾌하다. 공원안은 아침단련 하러 나오는 사람들로 활기에 차넘친다. 열심히 운동하는 갖가지 몸가짐을 구경하면서 걷노라면 언제나 비슷한 구역에서 약속한듯 한 다정한 부부를 만나게 된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있다. 그러나 그들 부부와 나는 옷깃한번 스친적 없고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이인데 웬지 자꾸 마음이 끌려 눈길이 머물게 된다.
휠체어에 앉은 안해의 옷단장은 계절따라 색상만 바뀔뿐 얼굴은 항상 색안경과 마스크로 가려 있어 원래 모습은 볼수 없었다. 그녀는 라지오를 틀고 건강상식 혹은 시사 등을 들으면서도 뭐가 불안한지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안해 뒤에서 보기 좋은 체격의 70세 남짓한 남편이 한결같이 휠체어를 밀었다. 그 모습을 볼때마다 감동을 받고 존경스러웠다. 함께 생활하는 동안 안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 역활을 얼마나 충실히 해왔기에 남편한테서 저처럼 한결같은 보살핌을 받을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되였다.
참된 부부는 만남의 소중함을 알고 상대의 존중하고 상대를 위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남녀가 만나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함께 할 것을 언약하고 살던 시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믿음과 인연의 소중함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요금 실정이다.
처음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끌렸던 때가 작년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던 봄철인 것 같다. 오늘도 출근길에 새봄이 선물한 연분홍 진달래를 눈에 듬뿍 담아 감상하며 걷고 있노라니 느닷없이 그들 생각이 떠올랐다. 말 한마디 건너보지 못한 그들 부부가 요즘 따라 보이지 않아 저도 모르게 “혹시 건강이 다 회복되여서일까, 아니면 건강상태가 더 나빠져서일까. “라고 되뇌이였다. 그리고 혹시 오늘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발걸음을 옯겼다. 그러다가 공원 동쪽 옛 동물원 호랑이굴 내리막길에 당도할 무렵 아래로부터 붐비는 사람들 속을 헤가르며 휠체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 눈 앞으로 다가오는 휠체어를 보고 나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기다렸다. 그들이 내 앞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때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안해가 아니라 남편이여서 나는 깜짝 놀랐던 것이다. 여직껏 환자로 여겨왔던 안해가 화사한 옷차림에 하얀 모자와 스카프를 목에 걸치고 휠체어를 밀고 올리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순간 나의 눈마저 의심하게 되였다. 평상시 그들 부부를 일년 넘도록 보아오면서 안해를 환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휠체어에 앉은 안해가 근심어린 눈길로 남편을 자주 돌아보던 의문도 풀렸다.
오늘은 환자인 남편이 올리막 길을 걷기 불편해 휠체어에 앉았던 것이다. 평지에 이르자 내가 원래 보아오던대로 안해가 다시 휠체어에 앉고 남편이 휠체어에 의지하여 걷고 있었다. 사실은 그동안 안해가 남편을 도와 걷는 련습을 시키려고 휠체어에 앉아 다녔고 사계절 변함없이 남편을 동반해 준 것이였다. 순간 안해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스스르 안해한테로 전해졌다.
“와, 내가 그동안 보와왔던 것이 전혀 다른 것이였구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믿을 수 없는 그들 부부의 경이로운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휠체어에 기대 서있는 남편의 얼굴에 돋아난 땀방울을 안해는 네모나게 접은 손수건으로 이쪽저쪽 닦아주고 준비해온 자그마한 보온병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컵에 물을 담아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안해의 살뜰한 보살핌과 따뜻한 사랑으로 남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여났다. 그런 미소를 바라보며 나는 훗날 언젠가는 건강을 되찾은 이들 부부가 두손을 서로 잡고 공원의 산책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오늘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한편으로는 나의 경솔한 판단으로 혹시 전에도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늘과 같은 잘 못된 분별로 오해하거나 마음 다치게한 일이 없었을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한차례의 사실을 통하여 나는 진실된 한 부부의 참사랑을 배우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의 참뜻을 실생활에서 체험해 보게 되였다.
2024. 06.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