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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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가로등입니다. 해가지고 땅거미가 깃들면 길가에서 은은한 불빛으로 주위를 밝힙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 주택가의 골목길을 밝혀왔습니다. 언제부터였던지 나는 이 골목길 어귀에 자리잡은 한 집의 부부와 친해졌습니다. 나는 이들과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나를 믿고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집 남편은 다부진 체격에 반곱슬머리, 특별히 짙은 눈섭, 두툼한 입술, 첫 인상에 성실하고 무던하며 책임심이 강한 남자인것 같습니다. 혹시 안해가 퇴근길이 늦어지면 늘 내 곁에 다가와 서성거리며 기다립니다. 남편은 언제나 첫사랑을 하는 청춘남녀들처럼 안해를 보면 포옹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부부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소는 가로등인 내 곁이 최고지요. 나는 이들의 이야기도 다 들어 주지만 누구한테 발설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때로는 내 곁에서 서로가 목소리를 높혀가며 한참을 버성깁니다. 남편보다 어려보이는 안해는 뭐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마지막에는 언제나 남편의 차분한 목소리로 안해를 다독입니다. 이들부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때론 인간으로 태여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그때마다 외로운 것은 가로등인 나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이들 부부의 비밀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안해가 나한테 속삭인 이야기이니 기실 비밀도 아니지요. 이제부터 들려줄 안해의 이야기 입니다.

… 시내에 자리한 단위로 옮겨 오면서 새단위에서 환영파티를 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시골에서 애 둘을 키우며 넉넉하지 않는 살림을 하면서 병원에 출근은 하였지만 술좌석에 몇번 앉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때까지 나의 술주량도 몰랐다. 새단위의 호사장도 산부인과 의사선생님도 단아한 옷차림에 머리스타일도 멋있고 참 당당했다. 그에 비해 시골에서 온 나의 옷차림은 초라했고 림스틱 색갈도 넘 촌스럽고 앉을자리 설자리를 찾지못해 어스벙거렸다. 그리고 저마다 건배사도 멋지게 하고 잔마다 굽을 냈는데 나는 어느 하나도  따라갈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는 새단위의 원장님과 의사선생님들이 권하는 술이라 거절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입에 댓다뗏다하였어도 얼굴에 난데없은 헤픈 웃음이 자꾸 나왔다. 환영파티가 끝나자 나는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밤중이라 동서남북이 가려지지 않았다. 더욱히 시골에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고 낮에는 몰랐던 고층건물의 현란한 불빛이 하도 번쩍거려 집으로 굽어드는 골목길을 찾지 못해 헤매였는데 나는 그날 처음 너 가로등을 만났지.

가을비가 자락자락 내리던 그날 밤, 너는 나에게 서슴없이 은은한 불빛을 내어주고 넓지도 않은 어깨에 기대라 했지. 마치 남편의 푸근한 품 같아서 속상했던 얘기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너한테 다 털어놓았다. 바로 그때 익숙한 발자국소리에 머리를 들어보니 남편은 머리부터 발까지 폭 젖은 나에게 아무런 말이 없이 우산을 씌워주었다. 밖에서는 부족하지만 늘 남편 앞에서만 우줄대던 내가 오늘은 왼지 남편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도 역시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걱정되여 밤 비를 맞으며 기다린지 이슥하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은 어느새 일어나서 끓였는지 북어국 한 공기를 떠서 밥상에 올려놓으며 식기전에 먹으라고 한다. 마른명태를 잘게 찢어서 냄비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달달 복다가 콩나물을 넣고 푹 끓인 구수한 북어국을 받아쥐고 한참 남편을 올려다 보았다. 남편이 이런저런 일로 술을 마이고 아침이면 속이 쓰릴것을 짐작하면서도 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곱지않아 따로 해장국을 끓여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 환영파티를 중간에서 깰수없어 분위기를 마추다보니 시간은 자취없이 흘러 밤중이 되였다. 저녁 시간이  어찌보면 낮보다 빨리 흐르는것 같았다. 처음으로 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다는 리해하지 못 하지만 조금은 알것 같았다.

어느해 겨울이다. 남편이 출근해서 아침에 나가면 밤중에 들어올 때가 푸술했다. 그날은 오후부터 하얀 눈이 날리며 골목길을 덮었다. 밤 10시가 되었다. 집에서 기다리다 못해 옷을 걸치고 집앞에 내려왔다. 눈발이 흗날리는 고요한 밤, 몸을 움츠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가로등 앞에서 늦어진 남편을 기다리다가 나는 새하얀 눈사람이 되였다.

그때 초조한 내 마음을 헤아리기나 한듯 먼데서부터 아담한 체격에 호주머니에 두손을 넣고 달싹달싹 뛰여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달려와서 두손으로 빨갛게 얼어든 나의 귀를 만져준다. 늦게라도 무사하니 마음으로는 고마웠는데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툭 쳐버리였다.  남편은 그저 “늦어 미안하오”라는 말만 하며 넉살좋게 웃는다. 요즘 련며칠 밤중에 집에 들어온다. 내 머리계산으로는 도무지 리해가 안된다. 퇴근해서  밤중이면  5 ~ 6시간이다. 그 시간에 도대체 남편이 뭐하는지 너무 궁금하였다. 하루는 남편에게 나도 한번 당신들이 모임장소에 가면 안되겠는가 하고 물었다. 남편은 어이없는지 웃으며 한참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느날 저녁 남편을 따라 나섰다. 남편의 동사자  7명이 모였다. 사전에 미루 말했는지 음식을 가리는 내가 먹을수 있는 볶음채와 랭채도 올렸다. 남편들이 다 그러하듯이 내 아내는 술을 마실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맥주를 커피처럼 홀짝홀짝 마이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느 누구도 줄기차게 건배를 하지 않는다. 속으로 아마도 무슨 작전을 짜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굴리는데 한분이 맥주잔을 들고 일어나서 말씀을 하신다.

“우리 주석(남편이 시로간부국의 문체를 담당한 주석이였음) 부인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보면서 “심판자격증 시험날자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준비를 잘 하고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남편은 얼른 “요즘 퇴근후에 모여서 부지런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게이트뽈 국가심판 자격증 1급이요 2급이요 아무튼 게이트뽈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사태파악은 되였지만 남편이 왜 요즘 퇴근후에 심판자격증 시험공부를 한다는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을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부부사이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넘어서 남편의 모임에 따라 온 것이 후회되였다. 모임이 끝날 무렴 나는 인사하고 제무안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도 인츰 뒤를 따라 나왔다.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택시타고 집골목길에서 내렸다. 예전 같으면 어스름한 골목길을 훤하게 비출 가로등이 지쳤는지 어둑어둑 하였다. 택시에서 내리자 남편은 되려 “미안하오”라고 연신 말한다. 그러면서 우두커니 서있는 나에게 남편은 문득 잔등을 들이대며 업히라고 하였다. 남편이 미안하고 할 말이 없을때면 나를 업어주는 습관이 있다. 남편은 억지로 나를 당겨 춰업고 캄캄한 골목길을 걸으며 밤하늘에 달과 별을 보며 뭐라고 자꾸 중얼거렸다. 귀를 대고 들으니 ‘이 철없는 여인을 잘 살펴줍소’라는 말인것 같았다. 한동네 총각이 무던한줄 모른다는 말처럼 결혼 30년이 되도록 남편의 진심도 모르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라고 했던가. 그해 겨울, 남편은 게이트뽈 국가심판 1급 자격 시험에 통과되였다. 그러나 남편은 자치주 성립 60돌 기념행사에서 펼쳐질 전주게이트뽈시합에서 심판 한번 서보지 못하고 예고도 없이 쓰러져 하루만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리별하고나면 안다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인줄 모르는 내자신이 오늘날, 가슴저리게 후회한들 뭐가 달라질것은 없다. 살아가는 동안 내마음 하나 편하자고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돌아보면 평범하고 단순한 우리부부의 삶이어도 순간순간 넘 행복하였다.

안해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너는 봄이면 봄비의 촉촉함으로 메마른 나의 마음을 적셔 주었고 여름이면 모기떼들을 이기지 못해 징징거리면서도 긴긴 밤을 지새우며 나를동무해 주었고 가을이면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목을 길게 빼들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랑의 길목을 밝혀 주었고 겨울에는 온몸으로 조용히 얹히는 눈송이들을 나 대신 묵묵히 받아 주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지만 나는 왜서 우리집 골목의 가로등, 네가 이렇게도 그리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가로등을 닮은 그 사람이 그리워서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