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그리운 언니야!”
나의 어린 시절 장인골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에 활기가 넘치고 싱그러운 풀꽃 향기가 코를 찌르는 숲속의 작은 마을이였다. 나보다 10살이나 이상인 언니는 9살이 되도록 내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산골에서 뛰노는 것이 안타까워 안개가 자오록이 피여나는 초여름의 이른 아침 벌방에 있는 외삼촌을 찾아 헐금씨금 떠났다. 언니가 해질녘이 되여 땀을 발발 흘리며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벌방으로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였다. 19살밖에 안된 언니가 시집을 가겠다니! 나는 어리방벙해서 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언니는 고운 쌍겹눈을 내리 깔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앉아있고 아버지는 엽초를 굵직하게 말아 뻑뻑 피우며 아무 말이 없다. 엄마는 한숨을 푸푸 내 쉬면서 머리를 자꾸 뒤로 쓸어넘겼다.
내가 태여나는 날 10살인 언니는 이집 저집 뛰여 다니며 소리쳤다.
“제 동생이 태여났어요. 고무신짝만해요. 엄청 작아요!”
마을 아줌마들이 꾸역꾸역 우리 집에 모여들어 갓 태여난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마흔이 넘어서 낳은 늦둥이니 요렇게 작은가?”
“열달을 못채워 이렇겠소. 이제보니 얘가 팔삭둥이구만!”
“울음소리도 가느다란게 숨이 붙어 있으니 살았는가 하지 어째 사람 구실 할 것 같쟇구만!”
너 한마디 나 한마디 근심어린 목소리로 나를 들여다보며 술렁댔다.
“그나저나 산모가 꼼짝 못해서 어떡하오? 산후바람 못 고친다는데!”
70년대 중기 돈도 없고 교통도 불편해 병원도 못가고 집에서 이불을 꽁꽁 쓰고 신음을 토하는 엄마를 모두 측은히 바라보았다. 나를 낳고 바깥 출입도 하기 힘들 정도로 엄마는 아프셨고 나는 비실비실하고 바짝 여윈 것이 살아남을 것 같지 못했다 한다. 아버지가 목재판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벌어들인 돈으로 온 가족이 연명하는 우리 집은 몇 집이 되지 않은 이 산골에서 제일 가난한 집이다. 특히 애물단지인 나는 마당에 쪼크리고 앉아 해볕쪼임을 하다가도 비시시 옆으로 쓰러져 인사불성이 될 때가 자주 있으니 학교에 간다는 건 꿈같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 아버지보다 언니가 더 급해했다.
“외삼촌이 소개했어요. 외삼촌 정미소에서 전기를 담당하고 있고 마음도 착한 사람이래요. 화자를 데리고 시집가는 조건도 다 들어주고 그 사람 전기수리부 잘되고 있어서 엄마 아버지도 이제 모셔갈 수 있다고 했어요!”
“언니야! 그럼 뒤집 용복이 오빠는?”
9살인 나도 언니는 이제 몇 해 있으면 용복이오빠한테 시집 가는 줄 아는데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이때 정주간 문이 벌컥 열리며 우림진 체구의 용복이 오빠가 불쑥 들어왔다. 오빠의 손에는 애기 팔뚝만한 더덕이 한웅쿰 쥐여있었다.
“오늘 캔 거 집에 절반 남겨놓고 가져왔다. 갔던 일 잘 됐어?”
아무 것도 모르는 용복이 오빠는 부리부리한 두눈으로 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새학기에 화자 학교 갈 수 있어!”
언니는 감히 용복이 오빠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오~ 그럼 됐구나! 화자 학교 가야 우리 모두 시름 놓겠는데 말이다!”
산골 사내답게 건장한 체구의 용복이 오빠는 듬직해 보이는 데다 목소리마저 우렁우렁해 오빠와 함께 있으면 너무 든든하다. 학교 다닐 때 언니는 외삼촌 집에 있는 시간보다 용복이 오빠와 함께 산골길을 걸어 다니며 학교 다닌 시간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오빠색시가 되는 줄 모두 알고 있는데 오늘 언니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긴 팔과 다리, 곧게 뻗은 등, 해바라기형 얼굴에 길게 외태를 땋고 다니는 언니는 산골의 정기를 머금은 듯 맑은 두눈을 가진 어여쁜 처녀다. 외삼촌이 소개해준 그 남자는 이렇게 이쁜 나의 언니한테 첫눈에 반해버렸다.
언니가 서두르는 바람에 언니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나도 언니의 치마자락을 꼭 붙들고 한시도 떨어질세라 뒤꽁무니를 따라다녀 언니가 첫날상 받을 때 외삼촌한테 한바탕 욕까지 먹었다. 형부와 언니는 8살이라는 나이 차이도 있지만 언니의 삐여난 미모는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을 입이 쩍 벌어지게 하였다.
창백한 얼굴에 왜소한 체구인 형부는 늘 뭐가 못마땅한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신경질적인 인상을 짓고 있다. 거기에 성까지 내면 눈쌀이 꼿꼿해 감히 말을 못붙인다. 그렇지만 이는 집에만 오면 그렇지 밖에서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싹싹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와주어서 온 공사마을에서 형부의 전기수리부만큼 영업이 잘되는 집도 없다. 착하다고 소문 놓다보니 린근의 마을에서도 일이 많이 들어온다. 집에서와 밖에서의 인상이 너무 달라서 나와 언니는 어정쩡할 때가 많았다.
시집와서 언니는 형부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하였다. 형부는 언니를 집에만 있고 자기만 바라보라 하였다. 언니가 시집온 지도 5년이 넘었다. 그동안 언니는 형부의 비위를 맞추느라 쩔쩔 매면서도 나한테 지극정성을 다 쏟았다. 자기 몸에는 돈을 쓸세라 아끼고 또 아끼면서 나의 약을 사는 데는 서슴없이 돈을 쓰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늘 미안하기만 하였다. 아버지가 그나마 장보러 올 때마다 언니의 손에 나의 약값에 보태라고 돈을 조금씩 쥐여주고 가곤 하였다.
약재를 캐기도 하고 버섯을 따기도 하면서 산판을 주릅잡던 아버지가 생각밖으로 편찮으시단다. 옛말에 헌독이 성한 독을 친다는 말이 있듯이 나를 낳고 항상 이마에 수건을 동이고 누워서 앓음 자랑을 하던 엄마보다 아버지가 더 엄중하였다. 아픈 아버지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말았다.
“아버지~ 제가 공부 잘해 출세하는 걸 꼭 보겠다 하셨는데 이렇게 일찍 저의 곁을 떠나면 어떡합니까!”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엄마와 우리 자식들을 끔찍히도 사랑해 주신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나는 몸부림치며 목놓아 울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자 엄마는 언니의 두손을 꼭 마주잡고 쉬임없이 어루쓸었다.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하는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 미안하다! 화자를 너한테 맡기고 가는 이 에미 용서해 주렴아!”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때 엄마가 도라지꽃 같다고 생각했다. 드넓은 평강벌에서 나서 자란 엄마가 아버지 하나만 믿고 이 심심산골에서 가난에 쫓기우고 질병에 허덕여도 항상 아버지만 바라보던 엄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넉달만에 조용히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난 아직 소학교도 졸업 못했는데 아버지 엄마를 다 잃었다. 유일한 혈육이란 언니밖에 없다. 나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고향집 마당 한복판에 드러누워 이리 구루고 저리 구루며 울고 불고 한참을 그렇게 보냈다. 언니가 옆에 와서 말없이 날 지켜보는 줄도 모른 채… 시련은 받아당할 수 있을만큼 준다고 하는데 언니는 병다리 나를 보살피고 신경질 많은 형부에게 시달리며 어느만큼의 시련과 역경을 받아당할 수 있는 건가! 부모를 잃고 눈앞에 닥친 현실에 나보다 더 슬프고 힘들었건만 언니는 참 잘도 참았다.
엄마까지 돌아가시자 나와 언니는 장인골에 갈 일이 별로 없게 되였다. 그래서 언니는 찌그러진 우리 초가집을 용복이 오빠네를 선뜻이 주었다. 집을 허물어 버리고 오빠네 마당과 합하니 여느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게 되였다.
“오늘 장보러 온 용복이 오빠 만났어. 너한테 달여먹이라고 또 이 산도라지를 한 포대 주고 갔다.”
언니가 도라지껍질을 벗기며 시무룩이 웃었다.
“내 병에 산에서 나는 게 뭐가 좋다하면 이렇게 가져다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네가 많이 건강해지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한다고 장인골까지 소문이 났는데 용복이오빠 가만 있을 리 있겠니!”
언니는 싱싱한 산도라지가 희구한지 이것저것 쥐였다 놓았다 하였다. 언니 말이라면 벼랑 끝에 핀 꽃도 꺾어줄 기세였던 용복이 오빠를 생각하니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호~ 하고 내쉬였다.
“언니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나 하고…”
내가 말끝을 흐리우며 울먹거리자 언니는 쓸데없는 말 한다고 핀잔을 주면서 잽싸게 손을 놀렸다. 얼마 후 용복이 오빠가 또 귀중한 토종꿀이랑 산더덕이랑 보내왔을 때 형부는 의심의 눈초리를 잔뜩 세우고 언니와 걸구들었다.
“너네 둘이 옛날부터 무슨 관계야?”
“또 예민하게 왜 이러세요? 한 마을이니깐 도움을 많이 받은 것밖에.,,”
“그런데 네가 집을 주고 그 녀석이 이깟 거 갖다주며 난리하는 거야?”
“비워두면 그대로 집임다. 부모님 련이어 돌아가면서 용복이 오빠 아니면 어찔번 했슴까!”
“뭐라고?”
짱~ 소리와 함께 언니가 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우며 쭈크리고 앉았다 나는 발딱 일어나 언니한테 더 손을 대려는 형부를 밀치며 소리쳤다.
“왜 하루건너 불쌍한 우리 언니 자꾸 때림까? 형부 제정신 아님다!”
“쪼꼬만한 게 무얼 알아! 못 비키겠니?”
형부가 나를 옆으로 콱 밀치자 언니가 부리나케 일어나 나를 몸으로 막으며 소리쳤다.
“애한테만 절대 손대지 마쇼! 내가 이제부터 절대 장인골 사람들 만나지 않겠슴다!”
언니의 부르짖음에 싸움은 일단락 되였다. 그렇지만 미간을 잔뜩 찌프리고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세우고 있는 형부를 보면 나는 숨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형부를 피해 여기저기 친구집에 가지만 언니는 고스란히 형부 신경질을 받아주어야 하였다.
형부의 의심은 날로 심해지면서 생활비 외에는 돈을 더 줄세라 린색을 떨었다. 내가 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걸 뻔히 알면서 언니를 속상하게 하였고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꽁꽁 묶어놓고 자기 손이귀에서 어찌할 수 없게 하는 형부 땜에 언니는 몸을 오돌오돌 떨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부담이 과중해지자 한동안 괜찮던 나의 몸이 또 휘청이고 있었다. 그날도 하학하고 집에 오니 언니가 애기주먹 만한 새까만 것을 밀가루에 살짝살짝 묻히며 쥐똥처럼 작게 환을 지어 따스한 가마목에 조심스레 널어놓고 있었다.
“우리 화자 이 약만 먹으면 현기증이 없어진대!”
언니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이게?”
“태반이라고 하는데 아기한테 영양을 주던 거라 너 같은 병에 제일 효험이 있다는구나!”
이때 형부가 정지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퍼러딩딩해 언니를 쏘아보더니 가마목에 널어놓은 약을 부엌에 통째로 확 던져버리며 소리쳤다.
“너 요새 애기 난 선자네 집을 왜 그렇게 뻔질나게 다녀? 선자남편 꼬시느라 그러는 게 아니야? 바른대로 말해!”
형부는 다짜고짜 언니의 머리태를 잡아서 한 바퀴 휘돌려놓더니 식장 앞에 확 내팽개쳤다. 아~ 하고 언니의 비명소리와 함께 식장유리가 박산나는 아츠러운 소리에 나는 몸이 오그라들고 온 집안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깨여났을 때 언니가 장판 밑에서 약을 줏고 있었다. 형부한테 휘둘리우던 언니를 생각하니 나는 울먹울먹해서 뭐라 말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언니~” 나는 결국 언니를 부르며 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니는 한손은 옆구리에 딱 붙이고 한손으로 장판을 잡고 힘겹게 구들에 올라왔다. 아까 식장유리가 깨지면서 언니 왼쪽 팔이 몹시 상했는가 보다. 그런데도 언니는 성한 손으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느라 여념이 없다.
“깨여나서 다행이다. 화자야 무서워말어라. 네가 한번씩 쓰러질 때면 언니는 형부가 미쳐 날뛰는 것보다 더 무섭고 가슴 아프다!”
언니가 어깨를 다독여주며 나를 위안하지만 나는 형부에게 맞아서 퍼렇게 멍이 든 언니의 얼굴과 잘 쓰지 못하는 한쪽 팔을 보니 가슴이 미여질 듯 아파나면서 눈물이 끊어지지 않았다.
“언니, 난 학교를 안 다녀도 돼! 우리 빌어먹더라도 이 집구석에서 나가자. 지옥 같아 여기가. 형부는 악마 같고!”
“언니가 상황설명을 잘하지 않아서 형부가 오해하는 거니깐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언니! 언제까지 저 미친 사람한테 이렇게 맞으며 살아야 돼?”
나는 목이 꺽 막혀서 언니의 성한 팔을 붙잡고 흑흑 흐느끼다가 어느 때 잠들었는지 몰랐다.
봄바람이 불어오고 산야가 푸른빛으로 바뀌여가는 계절이 오자 언니는 동네아줌마 몇이서 봄나물을 캐러 나갔다가 흥분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화자야, 영이 엄마랑 있잖아!” 언니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훗훗훗 웃었다.
“아무 것도 몰라, 나물에 대해서”
“언니 캐라는 걸 모두 캤겠네!”
“응! 나물 이름을 알려주랴, 뱀이 나올가 호들갑 떨어서 안심시켜주랴, 오늘 얼마 못캤어.” 얼마를 못캤다 고 하면서도 언니의 얼굴은 흐믓한 표정이다.
“언니가 산골사림인 걸 그들이 모르잖아?”
나는 기분이 상쾌해지며 신이 나서 말했다.
“래일부터 우리 집 날마다 찾아오겠대. 내가 안가면 자기네는 못 간단다!”
언니는 팔을 벌리며 기지개를 쭉 켰다. 아닌게 아니라 형부는 아줌마들 앞에서 세상 제일 다정한 남편인양 간식거리까지 챙겨주며 언니를 산으로 떠나보냈다. 화자 형부 최고라는 찬사를 잔뜩 받으며 헤벌쭉하더니 등을 돌리는 순간 벌레 씹은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여러 날 산으로 오르내리더니 언니는 형부가 눈치채지 못하게 봄나물을 좀씩 팔기 시작하면서 수입이 있게 되였다.
“화자야! 이제 시가지에 있는 큰 병원에 한번 가보자. 공부 계속하자면 쓰러지는 증상 꼭 고쳐야 돼!”
“언니 이러다 형부 가만 있겠어? 집에 언니 없으면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눈치껏 해야지! 넌 공부하는 데만 집중하고 형부와 언니 일에는 신경 쓰지 말어!”
해빛이 강해지고 대지가 짙은 푸른색으로 변한 한여름, 언니의 산행은 계속되였고 형부의 신경은 다시 날카로와졌다. 그날 나는 땅거미가 진 어슬녘에야 집에 왔건만 언니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형부가 들락날락하며 신경질을 쓰기 시작하는데 나도 저으기 조바심이 났다.
“무슨 놈의 나물이야! 그놈을 만나기 위한 핑게지. 산으로 갈 때부터 의심하긴 했는데!”
형부는 속히운 게 분하다는 듯 씩씩거렸다.
(언니 어디야? 산에서 길 잃은 거 아니야? 이 계절에 뭐가 있다고? )
바깥은 완전 깜깜칠야가 되였고 언니는 종내 나타나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나는 안절부절 못했고 형부는 형부 대로 길길이 뛰고 있었다. 형부는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언니를 마구 욕하기 시작했다. 형부의 점점 황당해지는 행동에 나는 무섭기도 하고 억이 막히기도 하였다.
삐꺽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기에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언니야~”
“아이구야, 이렇게 늦어졌구나! 제정신 없이 오느라 한 게..”
언니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형부가 대바람에 달려와 언니를 콱 밀어놓으며 고함을 쳤다.
“그 자식을 만나러 간 거지?”
언니가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뒤잔등에 메고 있던 주머니가 땅에 떨어졌다.
“그놈새끼 또 무얼 준 거야? 응?”
형부는 주머니끈을 와라와락 풀더니 그대로 땅에 팍 쏟아놓았다.
“언니 이게 뭐야? 삽지뿌리잖아?”
나는 쓰러진 언니를 와락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언니… 온 하루 삽지뿌리 캔 거야? 얼마나 힘든데 언니…”
나는 울먹였고 언니는 일어날 념을 안하고 넘어진 그대로 맥을 놓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형부가 삽지뿌리를 발로 마구 밟아놓고 걷어차며 소리쳤다.
“너 나 모르게 돈을 모아서 그놈이랑 달아나자고 준비하고 있지?”
언니가 억이 막혀 대답을 안하자 형부는 언니의 멱살을 쥐고 마구 흔들어 놓았다. 빨갛게 충혈된 두눈을 부릅뜬 형부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너무도 분하고 원통한 나머지 내가 꽥 소리쳤다.
“언니 나 때문에 그램다. 다 나 때문임다!”
나는 악에 받쳐서 형부의 머리를 마구 끄당기고 얼굴을 온 힘을 다해 잡아뜯었다. 그러자 언니를 콱 밀쳐버리고 형부가 몸을 솟구치며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래! 우리 집 애물은 바로 너야! 네가 없으면 우린 아이도 있을 게고 너네 언니도 저렇게 싸돌아 다니지도 않을 게다!”
형부가 부리나케 나를 깔고 앉아 주먹으로 나의 얼굴을 연신 강타하였다. 형부가 악을 쓰며 나를 때리자 작고 야윈 나는 어떤 반항도 못하고 앞이 캄캄해 나면서 정신이 아찔해왔다. 이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형부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언니가 부리나케 나를 안았다.
“화자야~ 화자야~” 언니의 부름소리에 내가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쓰러졌던 괴물 한마리가 언니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언니야- 언니!”
나는 목구멍이 꽉 막히고 몸이 굳어져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언니가 옆으로 쓰러지며 나를 안았던 풀리고 삽지뿌리 캐던 삽을 들고 미쳐 날뛰는 악마의 모습이 눈 앞에서 흐물흐물하며 점차 사라져갔다.
안개비가 내린다. 따스한 해살이 비추면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하얀 구름이 산등성이를 휘감으며 하늘로 향해 하얀 줄다리를 놓았고 알록달록 들꽃이 가득 피여난 내 고향 장인골에 언니가 한없이 부드럽고 평안한 미소를 짓고 서있다.
“언니~~” 달려가는 나를 향해 팔을 뻗치던 언니가 구름다리를 타고 훨훨 하늘나라로 날아오른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목놓아 언니를 부르다가 눈을 떴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병원침대에 누워 있었고 용복이 오빠가 침대 옆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언니가 구급실에 있다고 알려주며 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 오빠의 손이 몹시 떨리고 있었다. 과도하게 피를 흘린 언니는 종내 깨여나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악몽 같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멀쩡해 숨쉬고 있는데 언니는? 나의 언니는 왜 없단 말인가! 언니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불쌍한 내 언니를 왜, 왜 나한테서 앗아간단 말인가! 미친 저 악마는 저렇게 퍼렇게 살아있는데! “언니… 언니야!”
나는 가슴이 미여지고 극도의 슬픔으로 얼마나 기절하고 깨여나기를 반복했는지 몰랐다.
언니한테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일까? 막연한 현실 앞에서 아무도 탓하지 않고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목숨 다해 이 동생을 사랑한 언니! 언니를 목메게 부르노라면 잔잔한 안개비에 내 몸이 적셔지고 내 마음이 적셔지며 그리움의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려 내린다. 내 눈앞에는 나와 언니가 손을 꼭 잡고 장인골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알른거린다. 엄마, 아버지 마을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나와 언니를 어서 오라 부른다. 언니가 긴 팔을 뻗쳐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생긋이 웃는다.
“언니! 내 사랑 언니~”
정신병원에서 남은 일생을 보내던 그 남자는 어느 날 문뜩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였다. 그 남자가 내 기억에서 희미해지기까지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 흘러 강산이 몇번이고 바뀌여도 내 고향 장인골에는 지금도 안개비가 자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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